본 글은 “Introduction to Total Synthesis (전합성개론)” 카테고리 내에서 시리즈로 연재되는 글입니다.
Part 1. Introduction I – 전합성이란?
전합성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의미를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Wikipedia의 말을 빌린다면: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D%95%A9%EC%84%B1
조금 더 친근한 언어로 풀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유기반응들을 이용하여 간단한 분자를 더욱 고부가가치의 분자로 탈바꿈해나가는 과정, 정도로 간추려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유기화학 교과서에서 – 혹은 전합성에 대한 소개글에서 –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설명입니다.
관련 분야 전공자이거나, 고등학교에서 유기화학을 배우셨다면 위 글이 조금의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비전공자나 타 과학분야 전공자들께는 그리 좋은 소개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기반응들이란 무엇이며, ‘간단한’ 분자와 ‘고부가가치’의 분자는 어떠한 기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 천연물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 이러한 탈바꿈의 과정이 왜 필요한 것이며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이런 다양한 의문에 대한 매우 간소화된 답변을 드리는 것이 본 포스트의 1차적인 목적입니다. 화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작성하고자 하오니, 관련 학과 전공자들은 본인이 유기화학 혹은 유기합성 전공자나 전합성의 목적 및 의의, 그리고 과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시다면 본 시리즈의 Introduction 섹션을 건너뛰어 바로 Part 2.를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화학과 관련되지 않은 일상생활 속 예시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가구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원목 의자 1개를 들이고 싶어하는데, 이를 얻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1) 가구매장에 가서 이미 완벽히 조립되어 집에 싣고 가기만 하면 되는 완제품을 구매한다.
2) IKEA같은 조립식가구 판매매장에서 파는 키트를 구매해 추후 조립한다.
3)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다듬고, 사포질을 하고, 못을 박고, 바니쉬를 발라 의자를 직접 만든다.
선택지들의 좋고 나쁨을 단편적으로 나누긴 어려워 보입니다.
각자의 필요와 처한 상황에 따라 알맞은 방법을 고르면 되니까요.
빠르게 가구를 들이고 싶다면 1번을, 가벼운 조립과정이 괜찮다면 2번을, 목공기술과 장비가 있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3번을 택합니다.
허나 각 선택의 득에 따른 실은 분명 존재합니다.
1번의 경우 회사와 공장에서 디자인과 제작을 모두 마친 완제품만을 구매할 수 있기에 본인이 원하는 색과 디자인의 의자를 찾아야만 합니다.
2번은 선택에 있어 조금 더 자유도가 부여되지만 의자 다리와 쿠션, 뼈대 등의 부품 자체 역시 완제품이기에 한계가 존재합니다.
3번은 가장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나, 의자의 모양과 사이즈, 모양의 디테일, 원목의 품종에 대한 커스터마이제이션이 가능합니다.
위의 예시를 의약품와 같은 화합물에 적용시켜 보겠습니다.
이때의 ‘의약품’이란, 알약이나 물약 등의 거시적 제품이 아닌 – 제품 내 함유되어 있는 약효 성분의 분자를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의약품부터 시작해볼까요?
역사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중요한 진통제인 모르핀 (Morphine)은 덜 성숙된 양귀비 꽃에서 추출되며, 아편의 주요 성분입니다.
모르핀의 분자구조는 아래와 같습니다: (검정: 탄소, 흰색: 수소, 파랑: 질소, 빨강: 산소)

모르핀이 필요하다면 양귀비를 재배하여 아편을 추출하고, 이로부터 모르핀을 얻어내면 됩니다.
이와 같이,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완성된 분자들 중 약효가 있는 물질을 추출하여 약재로 사용하는 것은 인류가 오래 전부터 사용해오던, 의약품을 제조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식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약은 천연물신약, 천연물 추출의약품, Crude drugs, Natural product drugs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고, 국내에서는 생약(生藥)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후자의 경우 여러 의미로 혼용되고 있어 천연물 의약품이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가구매장에서 완제품으로 판매되는 의자를 구매하는 1번 접근과 비슷합니다.
자연이 – 더 정확하게는 자연 속 동식물, 곤충, 곰팡이, 균류 따위가 – 만들어준 물질들을 그대로 빌려서 인류를 이롭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죠.
화합물을 만들어주는 생명체를 가구매장에, 그리고 의자를 천연물에 비유하면 적당할 듯 합니다.
이렇게 천연물 자체를 추출하여 약품으로 사용하는 경우의 예시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 천연물명 (상표명, 화합물명) – 사용용도 – 추출원료명 (학명) ]
1) 빈블라스틴 (Velban, Vinblastine) – 항암제 (림프종, 고환암, 폐암, 뇌암 등) – 일일초(Catharanthus roseus)에서 추출
2) 퀴닌 (Qualaquin, Quinine) – 말라리아 치료제 – 기나나무(Cinchona)속 식물에서 추출
3) 라파마이신 (Rapamune, Rapamycin) – 면역억제제 – 스트렙토마이세스(Streptomyces hygroscopicus)속 균류에서 추출
4) 탁솔 (Taxol, Paclitaxel) – 항암제 (난소암, 유방암, 폐암, 위암 등) – 주목나무(Taxus brevifolia)에서 추출
5) 페니실린 (Penicillin, Penicillin) – 항생제 – 푸른곰팡이(Penicillium)에서 추출
6) 로바스타틴 (Mevacor, Lovastatin) – 고지혈증 치료제 – 느타리버섯(Pleurotus ostreatus)과에서 추출
7) 에포틸론B (Ixempra, Epothilone B) – 항암제 (유방암) – 점액세균(Sorangium cellulosum)에서 추출
8) 콜히친 (Colcrys, Colchicine) – 통풍 치료제 – 초원 사프란(Colchicum autumnale)에서 추출
아래는 위에서 소개한 8개의 천연물과 이를 추출한 생물을 나열한 것입니다 (좌측 상단부터 1번):

3) Streptomyces hygroscopicus, Rapamycin 4) Taxus brevifolia, Paclitaxel
5) Penicillium, Penicillin 6) Pleurotus ostreatus, Lovastatin
7) Sorangium cellulosum, Epothilone B 8) Colchicum autumnale, Colchicine
이쯤에서 천연물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넓은 정의로는, 살아있는 유기체에서 발견되는 유기물질 혹은 대사산물을 일컫나, 유기화학 및 전합성 분야에선 유의미한 생리활성을 가지는 화합물 혹은 대사산물을 천연물이라 칭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세포독성 및 생리활성을 가지는데, 대사산물의 합성 자체가 자신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타 생물체 따위를 죽이거나 쫒아낼 수 있는 독성 물질들을 만들기 위한 방어기제의 진화에서 파생된 것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자연 속 타 생명체에게서 구할 수 있는 물질들을 잘 사용한다면 약, 혹은 독이 된다는 것을 인류는 꽤나 일찍 깨달았습니다.
기원전 7천~6천년 전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사이프러스 나무(Cupressus sempervirens)나 감초(Glycyrrhiza glabra)로부터 향유를 추출하여 의약품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사리풀(Hyoscyamus niger)에서 얻은 추출물을 안약으로 사용해 동공을 확장시켜 아름다워보이는 효과를 얻고자 노력했다고 전해집니다.
또 역사적으로 유명한 천연물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내려진 사약의 주요 성분, 코닌(Coniine)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철학적 질문들이 신성모독 및 젊은 세대들의 타락 및 선동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사약을 통한 사형을 선고받는데, 이때 만들어진 사약은 독미나리로 알려진 Hemlock(Conium maculatum)을 끓여서 만든 사약이었습니다.
독미나리에는 코닌(Coniine)이라고 하는 독성의 알칼로이드가 있는데, 그 구조는 아래와 같습니다:

우측) Coniine과 독미나리 (Conium maculatum)
물론 그 당시에는 분자나 화합물과 같은 화학적 기반이 전무하였기에 천연물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과학이 발전하면서 독성을 가지는 식물이 정확히 왜, 어떠한 물질 때문에 독성을 가지게 된 것인지 밝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보여드린 분자 구조들 역시 오랜 시간 수많은 화학자들이 여러 분석 기법과 실험을 통해 알아낸 것이죠.
천연물의 역사와 중요성, 그리고 그 종류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트에서 더욱 자세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의자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1번 접근은 이미 만들어진 추출물을 그대로 추출하여 사용하는, 가구 매장에서 의자를 구입하는 방법이었습니다.
2번 접근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기 많은 디자인의 의자가 있다고 합시다.
많은 소비자들이 이 의자를 가지고 싶어 하나, 가구회사는 수작업으로 의자를 만들고 있어 높은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야 회사는 생산 라인의 부담을 줄이면서 의자를 더 많이 팔 수 있을까요?

IKEA라는 가구회사를 다들 아실겁니다.
스웨덴의 가구 기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회사이고, 조립된 가구를 판매하지 않고 소비자가 이를 직접 조립하게 함으로써 생산 단가를 절감하는 방식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죠.
완제품 의자를 판매하지 않고, 의자의 부품들만 제조하여 판매 후 소비자들에게 조립을 맡긴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공급량을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약품으로 쓰이는 천연물 중 위와 비슷하게, 큼지막한 부품들을 인간이 직접 조립함을 통해 제조되는 방식의 천연물들이 있습니다.
활성을 보이는 천연물이 너무 불안정하여 추출 과정에서 파괴되거나, 혹은 자연물에서 추출되는 양이 너무 적어서 의약품의 수요를 추출만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경우에는 2번 접근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에서 최종 물질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부품들을 찾고, 이에 변형을 가하여 최종 천연물의 구조로 변형하는 방법을 반합성(半合成), 즉 semisynthesis라고 합니다.
반합성을 통해 생산되는 가장 유명한 의약품은 아마 위에서도 언급하였던 탁솔(Taxol, Paclitaxel)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탁솔은 주목나무(Yew tree)의 껍질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 탁월한 항암능력에 비해 추출 수율이 너무 낮았습니다.
나무껍질 1kg당 50mg에서 165mg 정도가 추출된다고 하니, 질량비로 따진다면 그 수율이 0.005% – 0.0165%에 불과한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주목나무의 나무껍질을 벗기게 되면 그 나무는 죽게 됩니다.
Taxol을 정맥주사로 투여할 때 일반적으로 그 1회 투여량이 100mg에서 300mg 정도임을 감안하였을 때, 탁솔을 사용하는 진행하는 전 세계 환자들이 필요한 양의 탁솔을 주목껍질에서 추출하고자 한다면… 주목나무는 매우 빠르게 멸종되어 버릴 것이 분명하고, 더 이상 탁솔도 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잔인하게도, 이러한 이유로 항암제로서의 탁솔 개발을 멈추기엔 그 효능이 기존의 항암제들에 비해 너무나 탁월했습니다.
결국 탁솔의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기화학자들이 나서게 되는데, 탁솔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진 10-Deacetylbaccatin-III이라는 물질이 주목나무의 껍질이 아닌, 잎에서 대량 추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잎은 나무껍질과는 다르게 적정량 떼어내면 나무를 죽이지 않을 수 있어, 주목나무 농장에서 사실상 무한히 공급받을 수 있는 자원이었습니다.
1kg의 주목나무 잎 당 최대 1g의 10-Deacetylbaccatin-III을 추출할 수 있으니, 이는 같은 양의 나무껍질에 비해 6배에서 20배 더 높은 수율입니다.
아래와 같이, 이 두 분자의 구조는 좌측 꼬리부분의 유무를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동일(붉은색 구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합성을 통해 10-Deacetylbaccatin-III을 어떻게 Taxol로 바꿀 수 있을까요?
이러한 작업을 설계하고 수행하는 것이 유기합성화학자들의 실질적인 과제이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FSU)의 한 연구팀이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게 됩니다.
10-Deacetylbaccatin-III은 아래와 같은 4개의 반응을 통해 항암제인 Taxol로 합성됩니다:

화학 전공자분들께선 익숙하시겠지만, 화학자들은 무언가를 합성할 때 위와 같은 레시피를 남깁니다.
좌측의 분자는 반응물, 즉 시작물질이며 중심의 화살표는 반응물에 가한 화학 반응들을, 그리고 우측의 분자는 이 반응들을 통해 합성된 최종 생성물을 뜻합니다.
10-Deacetylbaccatin-III에 첫 번째로 TESCl과 imidazole이라는 물질을 반응시키고, 순차적으로 LiHMDS와 Ac2O, 다음으로 LiHMDS와 lactam A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산(HF)을 가한다면 Taxol이 합성될 수 있다는 것을 위와 같이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죠.
화살표 하단의 (80%)는 반응의 수율(질량비)을 의미하며, 10g의 10-Deacetylbaccatin-III이 위의 과정을 통해 8g의 Taxol로 변환됨을 의미합니다.
위의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고, 각각의 물질들이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유기반응을 통해 분자의 구조를 유의미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과, 위의 합성을 통해 훨씬 효율적으로 Taxol을 공급해 주목나무들을 멸종으로 몰고 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를 위해 위의 4개 반응들의 생성물과 반응물을 각각 그려보겠습니다. 반응이 일어난 부위는 빨간색으로 표시하였습니다:

틀린그림찾기와 같은 논리로 위에 접근한다면, 비전공자여도 10-Deacetylbaccatin-III에 존재하는 OH가 Taxol에 존재하는 OAc로 변하였다는 사실, 혹은 존재하지 않던 좌측 사슬덩어리가 분자에 추가되어 분자구조가 서서히 Taxol의 구조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Taxol을 최종 완성품인 의자에, 10-Deacetylbaccatin-III을 의자의 다리 혹은 등받이와 같은 부품에 비유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는 의자의 부품만을 구입하여 직접 조립하는 2번 접근과 비슷한 합성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서 1번 접근인 단순추출의 방법과 2번 접근인 반합성의 방법까지 소개했습니다.
마지막 3번의 방법은 본 시리즈의 주 내용인 전합성(全合成, Total synthesis)을 다룰 것입니다.
전합성이란 의자를 구하기 위해 주 원료인 나무를 구하고, 이를 자르고 다듬어 온전히 처음부터 최종 제품을 제작해내는 방식에 가장 근접합니다.
반합성과 비교하였을 때 초기 반응 물질의 구조가 매우 단순하고, 전체 반응의 수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전합성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친 Robert B. Woodward의 1954년 Strychnine 전합성 경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Phenylhydrazine이라고 하는 가장 좌측 상단 파란색 분자가 총 29개의 반응을 거쳐 최종 물질인 Strychnine(좌측 하단, 초록색 박스)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반응들과 그 중간체들이 매우 복잡하지만 차근차근 최종 물질의 구조를 조립하고 다듬어나가는 모습이 3번 방법과 유사합니다.
전합성의 또 다른 매력은 같은 분자에 대한 다양한 합성법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Strychnine은 그 복잡한 구조로 인해 오랜 시간동안 화학자들의 합성 타겟이 되어왔는데, 1954년 발표되었던 Woodward의 전합성 이후에도 수많은 화학자들이 전합성에 시도하였습니다.
이들 중 성공한 접근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 이미지가 있어 첨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Aromine,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
2025년 4월을 기준으로, 위의 그림에는 나와있지 않으나 가장 최근에 발표된 Strychnine의 전합성은 2020년에 발표된 것이었고 아마 지금도 세계 어딘가의 연구실에서 위 분자의 전합성에 몰두하고 있는 화학자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위의 이미지에서는 합성에 사용된 시작물질들만을 표시한 것이며 각각의 실제 전합성 경로는 앞서 소개한 Woodward의 전합성과 같이 여러 단계를 거치는 복잡한 레시피를 따릅니다.
사실 Strychnine은 16세기부터 Strychnos nux-vomica라는 식물의 씨앗에서 쉽게 추출되어 쥐약으로 사용되어 왔고, 추리소설에 독약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 분자를 위와 같은 방법들로 만드는 것 보다 자연에서 추출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경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장인이 한땀 한땀 심혈을 기울여 의자를 만드는 3번 방법이 공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해내는 1번 방법보다 빠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비교를 위해 예시를 들자면, Strychnine의 첫 전합성에 성공한 Woodward는 이를 완성하는데까지 약 7년(!)의 시간이 걸렸고, 최종 수율은 0.1% 미만에 불과했습니다.
1kg의 phenylhydrazine으로 합성을 시작한다면, 최종 생성물인 Strychnine은 1g도 채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학자들은 왜 이리도 비효율적인 과정을 거치며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분자를 만드는 데에 열중하는 것일까요?
어떠한 물질을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 위와 같은 연구를 지속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눈치가 빠르시다면 예상하셨겠지만, 전합성은 대량생산 및 합성 자체에 의의를 두는 학문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합성은 “유기화학의 반응성을 기반으로 하여 자연에 존재하는 복잡한 구조들을 어떻게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가”를 주된 목표로 삼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접근법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각각의 합성 과정은 서로 다른 출발점과 성격, 복잡도, 반응 step 수, 등등의 장단점들을 가집니다.
적당한 비유로는 레고(LEGO)블럭을 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레고 키트를 구매하여 동봉된 조립 매뉴얼을 따라 작은 부품들을 맞추어 최종 완성품에 다가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잠시 깊게 생각해본다면, 그 매뉴얼의 모든 조립 과정과 순서를 설계하고 만들어주는 누군가가 필수적으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같은 최종본을 보여주고, 여러 사람들에게 각자 이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그 조립 순서와 방법에 당연히 차이가 있을 것이며 그에 따른 조립의 용이성 및 조립 시간과 같은 특성에도 다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같은 분자를 만든다고 해도, 더 간결하고, 새로우며 우아한 방법으로 이를 합성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위의 Strychnine을 다시 한 번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1954년 최초로 발표된 Woodward 전합성의 경우 29개의 개별적인 반응을 가지나, 2011년 발표된 Vanderwal의 전합성은 단 6개(!)의 반응만으로 Styrchnine의 합성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Woodward의 전합성은 라세믹한, 즉 입체선택적이지 않은 합성이었으나 그 이후 발표된 Bosch, Mori, Shibasaki, Fukuyama, 그리고 Vanderwal의 전합성은 Strychnine의 2가지 거울상이성질체 중 1개만을 합성한 enantioselective synthesis였습니다.
1954년부터 2011년 사이 발표된 Strychnine의 전합성들을 정리한 좋은 Wikipedia 글이 있어 첨부하오니 추가적인 정보를 원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Strychnine_total_synthesis
이러한 발전들은 유기화학이 발전해오며 과거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새로운 반응들이 발견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고로 전합성의 변천사는 유기화학에 대한 인류의 이해가 얼마나 깊어졌는가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천연물을 얻는 3가지 방법을 간략히 소개해보았습니다.
본 글이 추출, 반합성, 전합성, 그리고 천연물에 대한 이해를 얕게나마 도울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앞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였지만, 다음 포스트인 Introduction II 파트에서는 전합성의 역사와 대가들, 그리고 전합성의 의의 및 목적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번 포스트에서 뵙겠습니다.
정말 유익한 포스팅이었습니다! 현재 이 업을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매우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유기합성 분과나 다른 학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좋은 포스팅 글 감사합니다. 재밌게 정독하였습니다.
반갑습니다. 홈페이지가 상당히 잘 정돈되어있네요. 혹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으신지요? 더불어, 유기화학자의 자질도 돋보이네요. 그대에게 좋은 일만 있길 바랍니다. 앞날이 기대가 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